- 자봉 이종철 화백
달마선사의 진정한 의미를 실천하는 21세기 단 하나의 보시 선화 작가
“상업성에 빠진 달마 선화 유행에 참된 부처의 혼으로 접근한 선화 작업으로 각성 촉구”
자봉 이종철 화백
17세기부터의 그림 한류 원조이지만 무욕한 불도의 의미 대신 상업적 기복신앙의 대명사가 된 달마선사도. 그러한 유행을 따르지 않고 달마선사도 본연의 참된 의미를 대중들에게 돌려주고 깨우쳐 주고자, 지난 30년 간 달마선사도로 예술보시를 한 자봉 이종철 화백은 재능기부의 진정성과 범국민적인 인간애의 표상으로 널리 귀감이 되고 있다. 행함에 있어서 대가를 바라지 않는 베풂의 미덕을 실천해 온 청렴한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주목해 보자.
숭고한 재능보시의 업, 달마선사의 선화가 본디 지닌 복록의 의미 되살려내
시대를 초월한 대선사 중에서도 빠른 붓질로 수 분 안에 그림 한 장을 완성하는 특성 덕분에 대승불교 문화권에서 큰 사랑을 받은 달마의 초상, 달마선사도는 자봉 이종철 화백의 세계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불교에서 선(禪)이란 마음을 가다듬어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진리를 탐구하여 무아지경에 드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선종을 중국에서 창시한 이가 바로 달마선사이다. 그래서 달마선사도의 선화(禪畵)는 곧 불교 3문의 으뜸이라 일컫는 선(禪)을 담은 그림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10대 시절 서양화를 배우고, 대중예술가들과의 공연사업으로 전국을 누빈 후 전문 사진작가를 거쳐 1987년 출가한 이 화백은, 붓다가 그러했듯 재능과 빛나는 명예로 가득한 화려한 세계가 허상임을 깨닫고 미련 없이 버린 후 선화가(禪畵家)의 길을 걷게 된다. 월산스님에 이어 도운스님을 은사로 모시며 법명인 자봉이라는 이름을 받고 선화도만을 그려 온 이 화백은 상업성을 표방하는 여느 달마화가들과 달리 붓을 든 지난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림으로써 보시를 행해 왔다. 대한불교원효종문화원장 재임시절에는 달마선사의 뜻을 계승코자 달마도화가협회를 창설하고 초대 회장에 추대됐지만, 의도와 달리 획일적인 형태 답습과 부적처럼 통용되는 상업화 때문에 과감히 협회를 해산한 이 화백은 더욱 다양한 표정과 의미를 지닌 창작 선화도에 천착하기 시작한다. 이 화백은 개개인과 가정에 스며드는 흉사를 내쫓으며 수맥을 차단하고 일상의 경사를 기원하는 선화도의 목적에 부응하되, 인연법에 따라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일필휘지로 그려 낸 선화도를 선물하고 복록을 기원하며 1,500여 년 전 달마선사의 덕망을 현대에 실천하고 있다.
수험생들과 투병환자를 가족으로 둔 이들에게 기원하는 것에서 국가의 중차대한 사건을 앞두고 횡액을 막는 임무까지, 붓 끝 하나로 수행하는 과정은 지난 세월 동안 무료로 그림을 받은 수 만 명에 달하는 이들에게 행운과 기쁨을 주는 작업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달마는 2002년 월드컵 4강을 기원하고자 축구공을 든 파격적인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했고, 2003년에는 하계유니버시아드라는 지구촌 축제와 지하철 참사라는 비극을 함께 맞이한 대구를 위해 250m라는 국내 최대 선화도로 기록된 작업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당시 대통령 표창 제의가 있었지만 사양하기도 했다고. 2005년에는 서울 청계천의 5.6㎞길이에 해당하는 달마선사도를 대중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기간에는 선화도 전시회를 대대적으로 개최해 세계 회원국 손님들 앞에서 문화와 종교의 화합을 이루어 내기도 했다. 또한 40여 회가 넘는 전시회를 거치는 동안 때로는 생활고를 겪기도 하고, 건강이 상해 희귀병인 안구의 황반변성을 앓아 오른쪽 눈이 차츰 실명해 갔지만, 이 화백은 이에 개의치 않고 지체장애인들을 위한 수익금 기탁과 청소년 금연캠페인 참가 활동을 하며 예술의 영역을 초월한 구도자적 행보를 계속해 가고 있다. 이 화백은 삭발 후 면벽수도를 하는 식으로 달마의 가르침을 따를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작위성을 배제하고 청빈한 삶과 손끝에 일념을 담아 표현하는 행위로 도를 행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스스로를 설득할 만큼의 진정성을 통해, 사람들에게 달마의 덕성을 전하는 삶에서 자신 역시 많은 것을 얻는다고 전한다. 그간 예술계의 신비로운 기인으로 메이저 언론사에 여러 차례 소개된 이 화백은 작은 화실과 불러주는 이가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에 도리를 다할 공간으로 충분하다고 전하며, 앞으로도 사회의 불행과 이웃의 불안정한 삶에 한 줄기 빛이 되는 예술 보시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렇기에 눈앞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이 화백의 선화도 재능보시는 화가의 수행, 불자의 보시가 합일된 행위이자 달마의 기상을 21세기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깨달음의 기록이다. 과거 뉴오따니호텔 초대전, 교토호텔 초대전 등 일본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온 그는 여생 중 다시 일본에서 활동할 것이라고 전했다. 74세의 적지 않은 나이로 여전히 화구를 벗 삼아 속세의 인간들에게 깨달음과 복록을 전하는 이 화백의 행보가 먼 훗날 예술 지행합일의 올곧은 사례로 기억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자봉 이종철 화백 |
The line drawings that spread teachings of Saint Dalma
Line drawing artist Lee Jeong-chul (aka Jabong)
Delivering Saint Dalma's wish for happiness and wealth
The line drawings of Saint Dalma in Mahayana Buddhism is well known even to normal people. Speaking of the drawings, a Dalma line drawing artist Lee Jeong-chul takes the center stage. Saint Dalma is the initiator of the Zen sect where people are advised to reach a trance (perfect selflessness) through an act of goodness and seeking the truth and thus the line drawings of Dalma represents the virtue of the three Buddhist sects. Lee was born in Japan, learned western painting in teenage, traveled the nation with fellow artists for performance before being a photographer and left his home for good (as a line drawing artist) in 1987 by realizing the fact that all things we pursue in the world is vanity. Lee was taught by Wolsan Monk and Dowun Monk whom he received his Buddhist name Jabong and from that point on he has drawn Dalma for more than 30 years. While serving as the director of Korea Buddhism Wonhyo Culture Center, he established Dalmado Artists Association but became rather regretful about the cliche in style and dismissed the association and walked his own way with a variety expressive methods. He gave his works as a present to people delivering Dalma's wish for happiness and wealth. Dalma drawings are known to kick out bad luck and the veins of water in one's house but to invite good luck. He especially gave out his drawings to tens of thousands of patients wishing a recovery of good health. Dalma in his drawings once appeared with a football wishing the Korean team's semi-final in 2002 Korea/Japan World Cup and the 250 meter long Dalma was presented for Summer Universiade and the subway disaster in Daegu the next year. In 2005, he drew the 5.6km long Dalma in Cheonggye Stream and held an exhibition for APEC Summit wishing harmony between different cultures and religions. Through the 40 times of his exhibitions, he suffered from hardships of life and the right eye being lost its sight but he ardently pushed forward his good will of helping people in need especially for disabled and young people. Lee said that he had gained more than those he gave a helping hand to. Despite his virtuous story being appeared on media numerous times, Lee sticks to his principle to help others without revealing his deed. Lee is now 74 but his passion and will in spreading teachings of Saint Dalma to people through his ling drawings are making the age nothing more than just numbers. <Power Korea> wishes Lee a good health.
정재헌 기자 jjh0522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