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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 산수의 아름다움 통해 다양한 감정 표현

기사승인 2017.12.12  15: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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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미술지도교사 자격증 취득 후 미술 강연 활발히 참여

   
▲ 심정(心靜) 박금서 한국화가

파아란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마지막 소원으로 그림을 그리게 해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삼십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붓을 놓지 않은 까닭에 지금의 제가 살아 있는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하얀 화선지위에 먹과 물감으로 붓을 어떻게 잡고 그리느냐에 따라 수천 수백의 오묘한 표정이 그려지는 한국화는 종이위에 물감과 먹물이 조용히 스며들고 은은하게 번지며 물의 맑고 흐리고 많고 적음에 따라 진하거나 흐리게 또는 무겁거나 가볍게 아름다운 조화를 이룹니다. 그 과정에서 서양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부드러움과 간결함과 맑고 투명한 정신세계를 느낄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은 탓일까? 밝고 화려한 채색을 선호하게 됨을 새삼 느낍니다.
우리나라는 산과 들이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이름 모를 야생화에서부터 수많은 아름다운  꽃과 나무와 풀들 - 경관이 수려한 내 고장 영동의 이곳저곳을 내게 남아 있는 힘이 다할 때까지 자연을 벗 삼아 화폭에 담아 보려 합니다. (작가노트 중에서)

매봉 안병찬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그림의 길 들어서
홍익대학교 미술디자인교육원에서 아동미술지도교사 자격증 받아

박금서 작가가 미술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실로 우연한 기회에서였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던 그녀는 바쁜 일상 속에서 건강이 악화되어 마음의 병까지 얻었다. 그 때 어린 시절부터 어렴풋이 꾸어왔던 꿈을 떠올리고 남편에게 그림을 그리게 해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처음 미술의 길로 들어서게 된 첫 걸음은 1985년 영동서예학원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학원을 운영하시던 동춘 박기태 원장님으로부터 사군자 중 대나무 그리는 법을 차근차근 배우면서 실력을 쌓아 전시회에도 참여하게 된 그녀는 다시 한 번 그림이 자신의 길임을 깨닫고 작품 활동에 더욱 매진하게 되었다.
작품 활동을 계속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었지만 아직 일상생활을 하기에는 힘들어하고 있을 때 박 작가는 막내아들을 갖게 되었다. 원래도 몸이 좋지 않았지만 산후 스트레스가 겹쳐 더욱 힘들어하고 있던 어느 날, 근처에서 열린 매봉 안병찬 선생님의 회갑 전시회에서 선생님의 작품을 보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원하던 그림이다'라는 깨달음을 얻은 그녀는 그길로 선생님에게 달려가 배움을 청했다. 그렇게 그녀는 1990년부터 매봉 선생님의 가르침 아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남편의 권유로 1995년부터 홍익대학교 미술디자인교육원에 등록해 서울까지 8년을 아침저녁으로 통학하면서 바쁜 생활을 이어갔던 그녀는 새벽 5시 반 차를 타고 올라가서 밤늦게 내려오는 생활 속에서 그림에 대한 깊은 애정을 키워갔다. 아이들에게도 미안했고 남편에게도 고맙고 늘 미안했다고 했다. 오랜 시간 배움의 끈을 놓지 않은 결과 박 작가는 2001년 아동미술지도교사 자격증을 받고 또 하나의 꿈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매봉 선생님이 1997년에 영동도서관에서 강의를 하셨는데 제가 자격증을 딴 것을 보시고 강의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조언을 해주셔서 10월부터 영동도서관 문화교실에 강의를 나가게 됐다. 처음 강의를 하면서는 이 자리를 소개해주신 선생님께도 그렇고 강의를 들으러 와주신 여러 분들에게도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었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서예와 문인화, 사군자, 유화, 수채화,
채색화 등 다양한 분야에 재능 보여

박 작가에게 있어 홍대 미술디자인교육원에 다니게 된 것은 그녀의 그림 인생에서 중요한 분기점을 마련해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지도교사 자격증을 딴 것 외에도 실경산수화에 대한 관심을 얻게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처음에는 서예에서 시작한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이 그녀를 지금의 길까지 인도한 것은 그 자체로 매우 놀라운 하나의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새벽차를 타고 북한산에 올라서 스케치를 하고 그림을 그리는 반복적인 일상은 그녀의 미적 감각을 깨웠을 뿐만 아니라, 꾸준히 몸을 움직이고 겨울에는 로프를 타고 산을 오르기까지 하면서 그녀의 건강이 더욱 좋아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그 때 본 겨울 산의 풍경을 마음에 담고 박 작가는 현재까지도 실재하는 자연의 풍경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그녀의 스승인 매봉 선생님이 마음속에 있는 풍경을 그려내는 관념 산수의 대가였던 것과는 또 다른 행보라고 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항상 화제(畵題)를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야 했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간직하고 있었던 박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확장하는 활동의 일환으로 한남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서예반을 수강하기도 했다. 그녀에게 붓글씨를 가르쳐준 것은 중재 신윤구 선생님으로 당시에 이미 여러 곳에서 강의를 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있던 그녀는 "시간을 쪼개 붓글씨를 또 배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힘든 하루하루 속에서도  작품을 완성해간다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그 시간들을 버텨낼 수 있었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박 작가는 서예로 시작해 문인화, 사군자를 그렸고 홍대 미술디자인교육원을 다니면서는 교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여러 과목을 수강해야 했기 때문에 유화, 수채화, 채색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자연스레 통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특히 다루기도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으로 알려진 채색화 작업에서 재능을 보여 종로갤러리에서 열린 채홍회전시에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그녀는 "한국화에서 볼 수 있는 수묵담채의 매력이 채색화에서도 충분히 꽃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가 만드는 작품들이 주로 풍경을 소재로 하고 있는 만큼 다양한 방식의 아름다움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라고 이야기했다.

한국미술협회 영동지부 자문위원으로 활발한 활동
'등고박견(登高博見)'을 좌우명으로 다양한 작품 시도할 것

한편 박 작가는 현재 한국미술협회 영동지부의 자문위원이자 한국미술협회 한국화분과 이사로 활동하며 지역의 미술 환경 발전을 위한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고 있다. 지난 2월까지는 영동지부장으로 활동하다가 임기를 마치고 현재는 자문위원으로서 협회의 활동을 돕고 있다는 그녀는 "지금까지 교사로서 아이들을 만나오면서 미술이 가질 수 있는 치유의 기능에 주목하여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녀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학교에서 체험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활동들을 직접 해볼 수 있도록 했다. 요즘은 일선 학교에서조차 미술 교육의 중요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어서 아이들이 직접 그림을 그려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박 작가는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창작 활동을 하며 창의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제가 그림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느꼈던 색채에 대한 희열감을 더욱 어릴 때부터 느낄 수 있다면 아이들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며 미술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그토록 오랜 세월 아이들을 지도해 왔기에 지금은 성인이 되어 만나게 되는 아이들도 있다고 하는데, 아이들이 길을 가다가 만나서도 인사를 하고 군인 신분으로도 전시장에 찾아와 인사를 해주는 모습에 가슴이 뿌듯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지금도 영동 지역을 사랑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영동의 모습을 그리고 싶다고 전하는 박 작가는 최근 양산팔경과 옥계리폭포, 강선대, 월류봉 등을 그린 작품이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후일담을 전했다. 산을 좋아하는 그녀의 성격에 걸맞게 그녀가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은 것은 '등고박견(登高博見)'이라고 한다. 이는 '높이 올라가서 멀리 보아라'라는 뜻의 성어로 순자의 <권학편>에 수록된 '나는 일찍이 하루 종일 생각만 해본 일이 있었으나, 잠깐 동안 공부함만도 못했다. 나는 일찍이 발돋움을 하여 바라본 일이 있었으나 높이 올라가 널리 바라봄만 못했다'라는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지금까지 오랜 세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배움에 대한 노력을 이어오면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품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박 작가는 "더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시간이 허락해주지 않으니 아쉬울 따름이다"라며, 나중에라도 자신의 작품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도록을 한 편 출간하는 것을 꿈으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자신의 작품을 통해 영동을 밝게 비추는 그녀의 행보가 더욱 끊임없이 이어져 대한민국의 미래를 비출 수 있기 바란다.

   
▲ 월류봉(57 x 46))한지에수묵담채

Emotions expressed through beauty of Korean landscape
Artist Park Geum-seo

“It is blessing for one to see the blue sky. I asked my husband to let me draw a picture as my last wish on the border of life and death. That was 30 years ago. Yes, I’ve lived still thanks to holding the brush tight no matter what. The charm of Korean painting I think is at simplicity and transparency but Korean landscape is too beautiful to limit myself in monotone. For the rest of my life, I wish to deliver the beauty of my hometown Yeongdong onto canvas.” – Artist’s note –

Being an artist was only a dream growing since she was a child. She grew up, led a normal life as a mother and a housewife. Suddenly, she fell ill and felts a surging desire for doing what she had yearned to do for years. In 1985, she knocked on the door of Yeongdong Calligraphy Academy. Pouring her passion in consistency, she learned skills one by one and grew to be good enough to participate in an exhibition during which she decided to walk the path without looking back. After a while, Park happened to see works of Ahn Byeong-chan and realized “These are the works I want”. He paid an effort to reach Ahn and started to learn under the instruction of him in 1990. At the same time, she took a course at Hongik Institute of Continuing Education for Culture and the Arts by encouragement of her husband which resulted in obtaining an art teacher’s certificate for children in 2001. The certificate led her to teach art for residents at Yeongdong Library on recommendation of her teacher Ahn. In terms of style, Park is different from her teacher. If the latter is a master of ‘abstract landscape painting’, Park prefers ‘realistic landscape’. She climbed Bukhan Mountain several times and was impressed by the landscape and this gave her an inspiration for realistic execution of nature. Started from calligraphy, she gradually developed her scope of works to Korean literary painting to oil painting to watercolor. She showed a particular talent in colored painting and participated in Chaehongheo Exhibition held at Jongno Gallery. “In the exhibition, I focused on delivering the fact that colored painting can be as charming as ink and water” says Park. Meanwhile, Park is serving as an advisory committee member of the Korean Fine Arts Association Yeongdong and the director of the Korean Painting Division of the association. “I spend a lot of time for teaching children and could see the possibilities of art to be used as a healing tool. It is important for children to build creativity that can possibly lead them to a great opportunity in the future. As for the future plan, Park showed her will to deliver more of the beauty of her hometown Yeongdong onto canvas and also compile her works into a book if time allows. 

Note: <Power Korea> “rewrites” the Korean article in English “concisely” for native English speakers and staff of foreign missions in Korea.

안정희 기자 honesty58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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