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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運)만 보는 게 아닌 희망을 찾아가길 바래요!”

기사승인 2017.09.12  14:3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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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마음 헤아리는 따뜻한 무녀(巫女) ‘여울만신’

   
▲ 여울만신

 [대한민국 민속신앙 ]  ‘이 시대 영매사를 찾아서’ (3)

사람들의 길흉화복을 점치고 기도 해주며 신령의 뜻을 전하는 경기도 용인의 ‘여울만신’. 그녀는 ‘황해도 굿’ 을 전승한 강신무녀로 올해로 4년째 길을 걷는다. 자신을 항상 부족한 신(神)애기라 표현하는 그녀는 이 길에 들어서기 까지 몸과 마음 누구에게도 말 못할 고민과 고생이 많았다. 하지만 신 제자가 되고 부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커다란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힘든 하루를 보내며 기댈 곳 없는 이들에게는 잠시 기댈 등을 내어주고 싶다’ 는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를 직접 만나 들어보았다. < 글 / 홍기인 기자> 
 
가서는 안 될 것 같던 길로 들어선 뒤 달라진 삶! 
여울만신은 어릴 때 가족 중에서 혼자만 보거나 듣고, 또는 선몽을 받는 등 증세가 자주 있었다. 그녀는 3살 때 부모 이혼으로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교회만 다녔다. 그런데 몸과 함께 신병(新病)을 심하게 앓는데다 내림도 받기 전 사람을 보면 말문이 먼저 터졌다. 나중에 아버지로부터 외할머니가 무당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버지는 혹시라도 딸이 같은 길을 갈까봐 미리 막으려 교회를 보냈던 것이다. 이런 바람과 달리 여울만신이 처음 굿을 접한 건 친할머니 때문이었다. “어느 날 꿈을 꿨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나타나 저희 친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가 됐다고 했어요. 3일째 되는 날 꿈도 같더군요.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애원하며 할머니를 데려가질 않을 방법을 알려 달라 했더니 제가 많이 빌어야 한다고 했어요. 신을 안 받으면서 굿을 해 할머니를 살릴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그렇게 꿈을 꾸고 급하게 굿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굿 성질을 몰라 신을 누르는 ‘눌림굿’이 됐고, 바로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게다가 쌍둥이를 임신했던 막내 동생마저 유산하고 집안은 커다란 풍파가 닥쳤다. 여울만신이 제일 견디기 힘들었던 건 자신의 딸아이가 처음에 누구나 걸리는 평범한 병이었는데 뇌수막염으로 죽을 수 있다는 판정을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 하나님이 아닌 신을 찾았다고 한다. 아이에게 여러 차례 고비가 오고 병원에서 장애자가 될 수도 있다는 판정을 받을 때도 매번 살려달라며 기도 했었다. 이런 지극정성이 닿았는지 다행이 후유증과 장애가 없이 넘어갔다. 사실 하나님만 섬겼던 여울만신이 장차 무당이 된다는 건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더욱이 세상의 차가운 시선과 가끔씩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안 좋은 뉴스로 이 길은 절대 가서는 안 되는 길처럼 여겼던 터였다. 누구보다 힘든 시기를 겪으며 어렵사리 무속의 길에 들어섰는데, 하지만 그녀의 삶은 놀라울 만큼 달라졌다. “신령님께 무릎 꿇고 살려 달려는 믿음이 강했는데 그게 닿았는지 모르겠어요. 내림받던 해에 모든 것이 잘 풀렸어요. 제가 무당 일을 계속 하다 보니 일차적으로 주변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잘 되었고, 제일 가슴 아팠던 첫째 아이가 병치레로 밥 먹듯 입원했는데 정말 지금은 건강하고 아프지 않는 것이 너무나 감사해요”  

“누군가에게 베풀거나 혹은 알아주면 돌아와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따듯한 신 제자로 거듭나  . 

“딸과 같이 찾아오신 어머니가 계셨어요. 점사를 보다가 이상한 게 많이 느껴져 ‘혹시 남자아이가 한 명 있지 않느냐’고 조심스럽게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아들 한 명이 있었다고 하시더군요. 남자 아이가 자기가 애장하던 ‘점퍼가 어디 갔냐’ 고 자꾸 말 하는 게 보여 제가 ‘그 점퍼가 어디 있냐’ 고 했더니, 어머니가 갑자기 엄청 우시더라구요. ‘사실은 아들이 스무 살 때 대학을 가서 자살 했다. 왜 죽었는지 원인도 모르겠고 자살 판명 나서 그렇게 알았다. 그런데 아들이 너무 그리워서 운영하는 회사 남자 직원한테 그 점퍼를 줬다’고 했어요. 제가 ‘그 점퍼를 준 게 큰 실수 하신 것 같다. 엄마는 아들이 그리워서 그런 것 같지만 아주 위험한 사태가 나지 않으셨을까요?’ 라고 했더니 ‘그 점퍼를 받아간 직원이 큰 사고가 나서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 고 그러시더군요. 제가 ‘아들을 위해서 그 직원을 위해서 점퍼를 찾아다 소각 하는 게 마땅하다. 그건 아들이 갖고 가야 할 점퍼일 것 같다’ 고 하며 그 분과 울었던 게 기억이 나요.” 여울만신은 인간 욕심 모두 내려놓고 솔직하며 진솔하게 천천히 단단한 그릇으로 성장하고자 한다. 인연의 끈을 소중히 여기며 한발 한발 내 딛는 그녀가 무녀 길을 걸으며 지키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여울만신은 “신 내림 받고 다짐했던 마음을 잃지 않으며 욕심 날 땐 항상 초심으로 돌아간다. ‘신령님이 누군가 살리기 위해서 와 있겠구나’ 하며 느끼며 누군가를 알아주거나 혹은 베풀며 살면 그만큼 저에게 돌아오더라” 고 했다. 그러다 보니 그녀에겐 어려운 사람도 많이 찾는다. 딱한 사정이 있는 이들은 점 값으로 그냥 만원만 올려놓고 주머니에 차비로 쓰라며 보내는 경우도 꽤 많았다. 아이를 데리고 온 분으로 상황이 안 좋았던 사례도 있었다. 너무 가슴 아파서 뒤에 그에게 쌀과 간식, 장난감들을 챙겨 한번 씩 보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울만신은 이런 것을 단 한번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 해 본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손님이 더 늘어난 계기도 되었다. 이 외에도 철칙을 세워 내림 받았던 날부터 지금까지 신당에서 받았던 점사비나 굿 했던 비용을 사비로 허투루 쓰지 않는다. 오로지 신령님 몫인 의대 등 용품비로 올려 이 또한 손님들에게 그 공이 같이 들어간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황해도 굿’ 가족으로 끈끈한 유대 맺어 전승 이어가.
춤과 음악을 겯들이는 굿판은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굿을 할 때 무당은 죽은 자는 명복을 빌고 산 자에겐 우환과 질병 없이 잘 살게 해달라며 신하고 접촉을 해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다. 여울만신은 ‘황해도 굿’ 보유자인 김매물 만신(황해도굿보존회 한뜻계 회장)을 신어머니로 해 전수 받았다. 굿은 지역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황해도굿’은 복색이 매우 화려하고 다양하다. 복식은 적게는 수십 벌에서 많게는 수백 벌을 갖추게 된다. 강신무를 상징하는 만신은 장군을 주원력으로 작두굿은 기본이고 거리와, 노랫가락 등 정성이 많이 들어가기에 시간상 며칠씩 소요되기까지 한다. 문서도 많아 일반적인 무속인은 조금 꺼려하는 편이다. 하지만 역사적 사료가 깊은 한국의 대표 굿으로 가치와 명성이 아주 높다. 특히 한국전쟁 때 황해도에서 인천에 피란 내려온 황해도 만신들은 친목 공동체를 만들어 같은 처지의 어려움을 나누고 굿을 통해 삶의 고통을 함께 의지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1세대들이 차츰 세상을 떠나면 ‘황해도굿’ 역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황해도 출신 만신에게 신 내림을 받은 신딸들은 이를 보존해야 한다는 의지들이 무척 강하다. 원로 만신들도 그렇지 않아도 자신들이 죽으면 ‘황해도굿’이 사라질 것이라 안타까워하던 터라 곧바로 굿 전수를 승낙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단체가 ‘황해도굿보존회 한뜻계’ 다. 이들은 굿 문화의 보존과 계승 및 발전, 사회봉사에도 나서며 국제적 교류 등을 통해 국내외로 널리 알려가고 있다. 특히 여울만신은 여느 무속인에 비해 나이가 젊지만 점잖고 번잡스럽거나 극성스럽지 않은 편에 속한다. 그녀는 “무속인들이 가끔 뉴스에 안 좋게 비칠 때도 있지만 그런 사람보다는 안 그런 사람이 많다.” 면서 “요즘 세상에 무당이라고 해 색안경 끼고 천대하는데 다 그런 게 아니란 걸 느끼게 해 주는 따뜻한 신 제자로, 힘든 사람에게는 봉사하며 또한 자식에게는 존경받은 엄마가 되고 싶다. 신당에 찾아오시는 분들이 운(運)도 보지만 마음이 힘들어 질 때 잠시라도 기대고, 무엇보다 ‘희망’ 을 찾아 갔으면 한다” 고 밝혔다.  

[Korean Folk Belief] ‘Finding mediums of our time’ (3)
“I look at your fate but give you hope”
‘Yeoulmanshin’ embraces your heart

Living a second life that seemed no way!

Yeoulmanshin was different from others since she was a child: she heard the sound, saw something or revelation in her dream which others could not. Her parents were divorced when she was 3 and she grew under the care of her farther and regularly went to church. She suffered from spiritual diseases and burst out her worlds when seeing people. Strange it was, her father found out that her grandmother was a shaman. He did not want his daughter walking the same path so he sent her to church. 

“I dreamed one day. An old man appeared and said that my father’s mother has time to go. I dreamed the same dream after 3 days. I asked him to save her life and he said that I should give a ritual and so I did.” But the ritual went wrong as it was ‘nulim ritual’ and the grandmother passed away. Soon after, her youngest sister who bore twins in her womb miscarried. Her own daughter also suffered from cerebromeningitis that could possibly kill her. This was the moment that she desperately sought ‘spirit’ but not Christian god to save her daughter. Strange it was, her daughter soon recovered. Yet it was impossible for her to be a shaman as ardent Christian she was. But things turned out better when she took the rather unfavorable way. 

“The year I was possessed by the spirit changed everything and things went well like a ship sailing on a kind breeze. People around me enjoyed better life financially and above all my first son who constantly suffered from various diseases miraculously became clean of everything.” 

“Give first and it will return back to you”
Reborn as new pupil of the spirit who embraces hearts of people

“A mother with her daughter paid a visit to me one day. I asked whether she could have a son also and she said yes. I saw her son keep saying ‘where’s my favorite jacket?’ and I asked the mother. Then she burst her tears out and said ‘He killed himself at the age of 20 and I had no idea why he did it. Seeing the jacket gave me memory of him and I gave it to a staff of my husband’s company.’ Then I said that you seemed to have made a mistake and she said back that the person who took the jacket was in intensive care unit due to an accident. I told her I might have to take the jacket to burn it and then I shed tears with her on the day. “

Yeoulmanshin advises to put down all desires and walk a truthful way. 

“I always tell myself ‘stick to my guns’ like when I was first possessed by the spirit. I feel the spirit has come to save someone’s life. And I give first what I have and the given returns back to me.”

Many times, she gave travel cost to her client if she reckoned that he/she seemed hard up. She even sent rice, snacks and toys to her client with a child on a regular basis. She never thought earthly things are hers to keep and she never has used the fee she received in return of her advice and ritual for personal occasion except for the goods needed for the spirit. This touched many of her clients and the number is still increasing thanks to her good heart and deed. 

Passing down the tradition of Hwanghaedo Ritual

The dance and music-driven ritual is melted with joys and sorrows of our lives. The shaman prays to the spirit that the deceased will go to heaven and the livings to avoid misfortune. Yeoulmanshin was passed down of Hwanghaedo Manshin Ritual from her spiritual mother Kim Mae-mul manshin (President of Hwanghaedo Ritual Preservation Society Handdeut Community). Hwanghaedo Ritual has characteristics of splendid colors and variety of the ritual costume which span from tens to hundreds. Manshin, symbolizing spiritualistic shaman, leads the jakdo ritual for several days with abundant music and dance. It is regarded as a difficult ritual among shamans but the value and fame of the ritual makes it one of the representative rituals of Korea. 

Many Hwanghaedo manshins who sought refuge in Incheon during the Korean War formed a community to share the sufferings but the tradition might gradually disappear as the members of the community are leaving the earthly world one by one. Yet because of this, the spiritual daughters of Hwanghaedo manshin like Yeoulmanshin have a sense of duty to pass down the tradition. For this reason, the members of the Hwanghaedo Ritual Preservation Society are actively engaging themselves in social contribution and international exchanges over Korea. Yeoulmanshin is relatively young among the members but has rather calm personality. 

“Some shamans are reported on media with bad images. But they are literally only ‘some’ as majority of shamans are not like them. I can tell that I’m one of the latter and I will do my best to prove this as an authentic shaman and a truthful mother.” I hope people who pay a visit in seeking of my advice will find a hope.” 

홍기인 기자 forum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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