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쉽고 재미있는 서각의 매력 널리 전파하는 ‘반야심경의 작가’

기사승인 2017.09.12  10:34:09

공유
default_news_ad1

- 문화재, 현판 등 관내 문화재 복원사업에도 활발히 참여해

   
▲ 석향 박찬동 작가

아무 곳에나 걸어놓을 수 있고 재미있는 작품, 피식 웃을 수 있는 작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작업장 문을 열어놓고 솟대가 되어 누군가를 기다린다. (작가노트 중에서)

사찰에서 우연히 접한 반야심경이 그를 서각의 길로 이끌어
박찬동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재능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습자지(화선지)에 쓴 글씨가 교실 벽에 걸리기도 했고 중학교 2학년 때는 교장 선생님이 학교에서 사용하는 상장의 글씨를 직접 쓸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그의 재능이 널리 인정받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전업 작가로서의 길을 가겠다고 본격적으로 결심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
박 작가는 고등학교 공예과에 진학했고 새로 들어간 학교에서도 한 번 붓을 잡으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고 칭찬이 자자했다. 그의 작품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완벽해져갔고 특히나 오랜 시간 작품을 만들면서 길러진 끈기와 집념이 그를 더욱 단단하게 했다. 박 작가는 “군 전역 후 우연히 친구를 따라서 사찰에 단청 일을 하러 가게 됐다. 거기서 한 달 간 숙식하면서 지내던 중에 반야심경을 접하고 마음에 큰 울림이 일었다. 그 때 반야심경을 100장 따라 쓴 후에 100번째 작품을 표구해서 지금까지도 기념으로 보관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그 때가 지금의 길을 열게 해 준 순간인 것 같다”라고 회고했다.
박 작가는 10여 년 전 유학 중이던 아들이 며느릿감을 소개한 날 문득 손자 생각이 나서 부랴부랴 할아버지 천자문을 한 달에 걸쳐 만들었다. 그 때 그가 만든 ‘할아버지 천자문’을 본 지인들은 하나같이 이 아까운 재능을 썩히지 말고 본격적으로 이 길에 나서보라는 조언을 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에 달해 있었는지를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그는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서각의 길에 들어서 자신만의 경로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문화재, 현판 등 관내 문화재 복원사업에도 활발히 참여해
‘반야심경의 작가’로서 관련 작품만 90여점 보유해

박 작가는 지인의 소개로 무형문화재 각자장 이수자인 은곡 손영학 선생님을 찾아가 전통서각을 배우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글씨를 써왔지만 서각을 배우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박 작가는 피나는 노력과 끈기를 통해 서각에 입문하여 현재까지 이르렀다. 박 작가는 음각, 양각, 목판, 판각 등 서각 안에서 나눠지는 다양한 분야를 두루 섭렵하고 문화재, 현판 등 관내 문화재 복원사업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박 작가는 “처음 서각을 시작했을 때 매일 20자 이상을 각(刻)했는데도 객관적으로 봤을 때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스로의 작품을 보기에도 그런데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어땠겠나. 처음 각을 시작하면서부터 전시회에 참여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스스로 만족할 수준의 작품이 나오기 전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 결과 1년 동안 1,000자를 각한 후에야 첫 전시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고집불통이라고 핀잔도 많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라고 웃음을 지었다.
박 작가는 ‘반야심경의 작가’로 불린다. 반야심경에 대한 그의 애착은 마치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서각에 입문할 때부터 반야심경에 푹 빠져 전체 270자를 계속 작업하다 보니 그가 여러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들이 모두 반야심경일 정도라고 한다. 현재까지 그가 판각한 반야심경 작품은 90여점이다. 게다가 그는 총 108점의 반야심경 작품이 완성되는 날 ‘반야심경’이라는 한 가지 소재로 한 전시회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번뇌를 버리는 공(空)의 사상을 말하는 반야심경의 글귀가 그의 마음을 울린 것처럼 그 역시 반야심경의 글귀를 통해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서각 접하기 위해 서각가들의 의식 전환 필요”
참샘각가연구회 회장으로서 활발히 활동해

그 뿐만이 아니다. 박 작가는 현대서각의 맛에 빠져 현대서각을 같이 배우기로 하고 2010년 겨울 묵경 김광성님을 찾아갔다. 그는 현재 대한민국 각자협회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인물이다. 또한 현천 박영달님에게서는 현대서각에 본격적으로 눈을 떠 쓰고 새기고 만드는 즐거운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다고 한다.
그는 항상 서각 작품의 단순화를 주장하고 있다.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를 개발하기 위해 문자를 과도하게 변형하거나 기교를 부리는 것이 오히려 서각의 대중화를 지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박 작가는 “서각가들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쉬운 서각, 재미있는 서각을 만들고 전시용으로 갤러리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서각으로서도 더욱 많은 서각 작품을 접할 수 있어야 한다. 새기는 맛의 즐거움을 널리 알릴 수 있다면 서각의 대중화를 위한 길이 만들어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박 작가는 현재 참샘각가연구회 회장직을 맡아 활발히 활동 중이고 현대서각 동아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대한민국 각자협회에서도 서각 지도자 연수과정을 거쳐 부이사장 겸 협회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대한민국의 서각 발전을 위해 앞장서서 노력하고 있는 박 작가는 향후 미술을 전공한 아들과, 손자가 함께하는 삼부자전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서예나 서각을 즐기는 이들을 만나면서 가장 큰 즐거움을 느낀다는 박 작가의 미래가 더욱 찬란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반야심경

[Art] Seogak artist Sukhyang Park Chan-dong
The Prajna-Paramita-Sutra artist makes ‘seogak’ easy and fun
Park engages in recovery of cultural assets and signboards

“A seogak where you can hang on a wall you wish, a seogak that is easy and fun and a seogak I can laugh with or someone can bow in empathy, is what I wish my seogak looks like. Today, like every other day, I become a totem pole, open the door of my studio and wait for someone to visit.” - Artist’s note –

Prajna-Paramita-Sutra in a temple captivates the heart of Park

Park showed his great talent in calligraphy since he was a child. His hand writing on Korean paper was put on the wall of his class when he was a 5th year elementary student. He also wrote the letters of the prizes given to students by the principal when he was a 2nd year middle school student. Having seen his skills ever growing, he decided to be a calligrapher when he became a high school student. 

He studied artistic crafts in high school and he never put down his brush once it is in his hand. His technique became near perfect as time went by and his tenacity and obsession made him stronger than he thought day by day. 

“After discharged from the army, I started ‘dancheong’ – Korean decorative color patterns – with my friend in a temple. I stayed there for a month and came to know about Prajna-Paramita-Sutra. There was a big resonance in my heart and I wrote it 100 times of which I have still kept the 100th paper today as a souvenir. Looking back, that was the very moment which made who I am today” says Park. 

About 10 years ago, his son introduced him his future wife and Park was hit by a thought: he wanted to write a book of the Thousand-Character Classic Texts for his future grandson. He made the book in a month and the people who saw it were surprised by the neat and immaculate execution of all 1,000 words. Praises were pouring down on him and encouraged by this, Park started his career as a seogak artist in earnest.

Park boasts 90 works of Prajna-Paramita-Sutra
Actively engaging in recovery of cultural assets and signboards

Under the instruction of Eungok Sohn Young-hak, a master seogak artist of intangible cultural asset, Park learned necessary technique for traditional seogak. Though a professional calligrapher, making a progress was not easy. Yet the difficulty could not surpass his passion and tenacity and he mastered various carving methods and techniques. He then expanded the scope of his technique to recovery of cultural assets and signboards. 

“I carved more than 20 letters a day but they didn’t seem to be completed. I thought how they might look like to others while I’m not satisfied with my works. So I decided not to participate or hold any exhibitions until I reach to a certain level. It was when I carved 1,000 letters in a year that I participate in a seogak exhibition for the first time.”

Park probably is best known as ‘the Prajna-Paramita-Sutra artist’. He takes his love and attachment to the sutra as his destiny. From the very start of seogak, he focused on the sutra’s 270 letters and most of his works that won a prize or two were all about the sutra. 
To push forward his zeal, he is planning to hold a Prajna-Paramita-Sutra exhibition when he finishes 108 works of the sutra (90 works completed at the moment). The sutra tells Park about ‘emptying’ worldly desires. Like this teaching resonated with his heart, Park wishes to deliver it to the people at the exhibition. 

“Seogak should be easy and fun for normal people”
Park leads Chamssem Gakga Research Society

In 2010, Park paid a visit to Mukgyeong Kim Gwang-sung, who is serving as the president of the Korea Modern Seogak Association to deepen his knowledge and technique in modern seogak and is currently receiving advice from Hyunchun Muk Young-dal who widened Park’s eyes on modern seogak. Park’s years of knowledge and technique tells him that ‘simplicity’ is the key for seogak. One’s unique style is important but over-done styles or techniques can make the public turn their back from seogak, according to Park. 

“Seogak should be easy and fun for normal people. Seogak artists are not necessary focusing on works that can only be displayed in exhibitions but on works people can easily engage in everyday life. This way, we can make seogak more popular than now.”

Meanwhile, Park is serving as the president of the Chamssem Gakga Research Society and actively engages himself in activities of various modern seogak clubs. He also finished the seogak instructor’s course of the Korea Seogak Association and currently is serving as the vice president and a steering committee member of the association. 

When asked about his future plan, Park said that he was planning to hold an exhibition with his son and grandson who both majored in art. Park added that he feels really good and rewarded whenever he meets people who do seogak and he hopes that more people will enjoy the charm of seogak in exhibitions and in everyday life. 

안정희 기자 honesty5835@naver.com

<저작권자 © 월간파워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3
default_setImage2

최신기사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