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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각의 한 길 꾸준히 걸으며 정도(正道)를 가는 예술가

기사승인 2017.08.21  12:5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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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태주시 풀꽃’으로 2016년 통일미술대전에서 대통령상 수상

   
▲ 초현서각연구실 최종윤 작가

서예(書藝)와 서각(書刻)은 하나로 통한다. 이 두 가지의 예술은 붓으로 정성스럽게 써내려간 글씨를 통해 독특한 심상을 발전시킨다는 면에서는 일치하지만, 한편으로 그것을 나무에 입체적으로 새겨 은근하면서도 다채로운 면을 발산하게 하는 것은 서각만이 가진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예술 분야가 그렇듯이 현재 많은 서각작가들은 작품 활동만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2016년 통일부 주최 공모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초현서각연구실 최종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자신만의 경험으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만들어왔다.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걸어온 서예와 서각의 길
경북 영천 태생의 최종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한자에 관심이 많았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서예를 배웠다고 한다. 습자지에 서툴게 써내려가던 글씨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평생의 스승님을 만나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당시 중학교 미술선생님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작가로서도 활발히 활동해 입선한 경력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동네 서예학원에 꾸준히 다니던 어느 날 서각 선생님이 신문에 나는 모습을 보고 연락처를 수소문해 선생님으로부터 서각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소문했던 선생님은 미목 이주강 선생님으로 서각협회 전(前) 이사장을 지내기도 한 인물이었다. 최 작가는 당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음에도 저녁 시간을 쪼개 이 선생님으로부터 서각을 차근차근 배우기 시작했다. 일과 함께 배움을 병행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천천히 자신의 길을 가기 시작하니 그에게도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최 작가는 “전통서각을 하기 위해서는 한시(漢詩)와 한학(漢學)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해야 했다. 글을 직접 쓰지 않는 작가도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자신의 작품에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글을 쓰고 각을 하는, 자필자각의 경지가 필요했다고 생각했다. 몇 권의 고문(古文)의 경우에는 현대에 쓰는 글자와 모양이 달라 몇 권의 자전을 펴놓고 집자해서 작품을 했을 정도이니 그 때야말로 서각 하나밖에 모르고 지내온 각고(刻苦)의 세월이었던 것 같다”라고 회고했다.

2016년 통일미술대전에서 ‘나태주시 풀꽃’으로 대통령상 수상
“작가로서의 최고상을 받게 되어 기뻐”

최 작가는 이후 각종 공모전 등에 활발한 출품을 하며 자신의 이름을 서서히 알려갔다. 그는 어떤 작품을 만들더라도 모든 순간을 소중히 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한민국 서예대전 입상에 빛나는 경력과 함께 서예대전에서 처음 입상을 했던 그의 작품은 바탕이 되는 글을 100여장 쓰고 난 후 그 중 한 장을 선택해 각으로 새긴 작품이었다고 하니, 작품에 대해 갖는 그의 존경심과 올곧은 태도를 알 수 있는 일면이라고 할 수 있다.
최 작가는 이와 함께 “통일미술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라고 전했다. 통일부와 (사)평화문화재단이 주최하고 통일문화제운영위원회가 주관한 ‘제20회 통일미술대전’은 평화통일과 국민통합에 기여하기 위한 작품들이 다수 출품되었으며, 최 작가의 분야인 서각만이 아니라 공예, 디자인, 문인화, 민화, 불화, 뷰티, 사진, 서양화, 선묵화, 사경, 성화, 수채화, 전각, 캘리그라피, 한국화, 한글서예, 한문서예, 현대서예, POP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이 함께 출품되었다. 그 중에서도 서각 작품이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최 작가는 “처음 작품을 내고자 하는 마음을 먹었을 때 통일에 대해 상투적인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념적이고 뻔한 이야기보다는 가슴에 직접 와 닿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우선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글씨를 냈고, 그것을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3차에 걸친 심사 끝에 ‘나태주시 풀꽃’이라는 저의 작품이 대상에 당선되었다. ‘풀꽃’은 우리의 동포들을 일컫는 것이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작가로서의 최고상을 받게 되어 기쁘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특히 이번 수상작은 작년 12월 28일부터 올해 1월 3일까지 인사아트플라자갤러리 전시장에서 많은 관객들을 만나 최 작가의 이름을 더욱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대구교육대학 등에서 서각 수업 진행
“천천히 정도(正道)를 가는 것이 중요해”

한편, 최 작가는 작가로 활동을 시작한 초기에는 육군3사관학교와 대경대학평생교육원으로, 또 현재는 대구카톨릭대학에 주1회 수업을 나가며 서각의 아름다움을 널리 전파하고 있기도 하다. 서각 작가로서 칼을 잡기 시작하려면 익숙지 않은 나무와 친해지고, 칼 잡는 법을 배우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서각을 직업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은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었지만, 취미나 인격수양을 위해 서각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대한민국 미술계에서 서각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기대에서 최 작가는 더욱 열심히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후학을 양성한다기보다는 같이 공부하는 과정이다. 저에게 가르침을 받는 분들 역시 저에게는 스승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천천히 정도(正道)를 가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라고 밝혔다. 서각을 처음 배우는 많은 사람들이 빨리 결과물을 내고 싶어 기초가 명확하게 잡혀 있지 않은 상태에서 진도만 나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빨리 싫증이 나거나 깊이가 없는 작품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최 작가는 자신의 학생들에게 천천히 가는 길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그는 “항상 제 학생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밭에 풀을 베러 갔을 때 한 사람은 땡볕에서 쉬지도 않고 열심히 일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칠 때는 쉬면서 낫을 갈기도 하면서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일을 마치고서 비교해 보면 후자가 풀을 더 많이 베고 덜 지친다. 욕심내고 많이 한다고 능률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꾸준히 강조하고, 학생들 역시 그 점을 알아주기에 지금의 활동이 이어질 수 있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생업에 종사하며 작가로서도 활발한 활동 이어가
한국미술협회 전통미술․공예 분과위원장으로서 꾸준한 도움

최 작가는 현재 완산동에서 가축약품대리점(한일약품)을 운영하고 있다. 작가로 활동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법한데 자신의 생업을 갖고 남는 시간에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또 그의 사무실을 보면 지금까지 그가 작업해온 작품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 매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의 사무실 풍경은 그의 인생을 하나로 압축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 작가는 “처음에는 낮에 일하고 밤에 글 쓰고 각을 하는 생활이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작업들을 하는 것이 즐거웠고 어느 날은 작업실에서 밤을 새고 집에 가서 세수하고 아침만 간단히 먹은 뒤 다시 나올 때도 있었다. 이 모두가 스스로의 즐거움이 없었다면 이룰 수 없었던 일이다”라고 밝혔다. 현재 그는 사무실과 작업실에 100여 점 이상의 작품을 구비하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예술이라는 것도 모르고 단지 좋아서 했었는데, 지금은 회사 사무실에까지 작품을 걸어놓고 보니 단순히 장사치로만 생각하지 않는 시선이 좋았고 스스로 생활의 격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한다”라고 밝혔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전통미술․공예 분과위원장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도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면서 생업을 하는 것이 바람이다”라는 소망을 밝혔다. 그는 또한 “어떤 작품도 마음이 가지런하지 않으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강조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각 작가로서 한 길을 걸어갈 것이라는 꿈을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굳은 의지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최 작가의 미래가 더욱 찬란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 심화기평

[Art] Artist Choi Jong-yun of Choihyeon Seogak Center
Walking a single path as a seogak artist and winning the presidential prize

Seogak has been a life companion of Choi
Choi was born in Yeongcheon City. He showed a great interest in Chinese characters and started calligraphy when he was a third year elementary school student. He learned the skill under the instruction of his art teacher Lee Ju-gang in the middle school and Lee, who once served as the president of the Korea Seogak Association, eventually became his lifetime teacher. 

Choi gradually ungraded his technique under Lee’s professional instruction in the evening as he had to work during the day. It was not an easy path to take but he mastered necessary skills one by one with patience and tenacity.

“Apart from seogak (wood letter carving) technique, I also had to study about Chinese poems and classics. Some seogak artist focused on carving itself but I wanted to achieve both writing and carving at the same time in order to deepen each of my work. Some ancient letters were really hard to discern their shapes from modern ones so I had to spend a lot of time to flip pages of Chinese letter dictionaries for reference. But I loved the job” says Choi.

Winning the presidential prize with ‘Nataeju‘s Flower Plants’
Choi started to make his presence in the seogak world through various competitions. He displayed his works at the Grand Exhibition of Korea and the Grand Calligraphy Exhibition of Korea. He wrote 100 papers of letters of which he chose only one paper of the letters for his work. It is his principle to make a one perfect one over several imperfect ones. 

Choi said that winning the presidential prize at the 20TH Korea Unification Art Exhibition was most memorable events of his life. The exhibition is held by the Peace Cultural Foundation and sponsored by the Unification Cultural Festival Steering Committee. The works displayed at the exhibition covered various areas from seogak, craft, design, folk and Buddhist paintings to beauty, photography, ink, watercolor, calligraphy, Western and Korean paintings and POP. 

“I wanted to create something meaningful and touching and I presented the letter forms and explained before I launched the carving. My work ‘Nataeju’s Flower Plants’ went through 3 times of screening and eventually won the presidential prize. ‘Flower plants’ means Korean people and I was really proud of my accomplishment.”

Teaching students at Deagu University and carrying on the creative zeal
Choi taught students at Korea Army Academy at Yeong-Cheon and Daekyeung University Lifelong Learning Center before and is carrying on her teaching career at Daegu University. Not many people walked a way of seogak artist nowadays as it take a considerable amount of time to master the skill but it will take a big part of the art world if more people do the art even if it is a hobby, according to Choi. 

“I don’t teach students one directionally but it is more like a process of learning together because students are also my teachers and they are the source of my power to carry on my creative zeal.” 

Some students are greedy to reaching a certain level in speed but Choi emphasizes steadiness.
“I always tell my students: one farmer works hard without a rest under the sun in the field and another also works hard but with a good amount of rest every now and then. And the latter cut the grass more than the former at the end of the day. Being greedy doesn’t bring efficiency but steadiness does.”

Serving as the head of the traditional art and craft division 
Choi is running a livestock drugstore branch of Hanil Pharmaceutical in Wansan-dong. Although he does not seem to have much time to create seogak works but his office is full of seogak works. One might imagine the whole life of Choi by observing over 100 works lined up on the walls of the office. 

“It wasn’t easy to work in the day and do seogak in the evening. But I really enjoyed creating something of my own and I sometimes spent over night at my office and went to home only to return back to the office after simple breakfast. It was impossible if I hadn’t had passion.”

“I put my works at the drugstore and I feel like the works upgraded my life from a chemist to an artist and the store looks more gracious with them.” 

Currently, Choi is serving as the head of the traditional art and craft division of the Korea Fine Arts Association and he is determined to carry on his creative zeal in steadiness and perfection. When asked about his dream, he said he wished to list in name among the great seogak artists in Korea in the future.

안정희 기자 honesty58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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